청와대, 경찰에 이메일 공문..."촛불 차단"
- '공문' 발신자는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66439
내 이럴 줄 알았지...
해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새로운 연도가 익숙해질만하면 또 새로운 연도를 사용해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은 다르다. 해가 바뀌었다고해서 사람의 생활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인지... 다 야간대학원 탓이다.
1월 5일, 실질적으로 새 연도의 첫 업무를 하는 날이었다. 정해진 퇴근시간보다 30분 일찍 튀어나와 학교로 향했다. 영어 레벨테스트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대학원 선배가 되어버린 회사 이사님이 5분에서 10분 정도 영어로 대화만 하면 끝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했지만 워낙에 멀고 외진 곳에 있는 학교다보니 저녁먹을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간단하게 Preliminary Term에 대한 안내를 들은 후 영어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문법, 독해, 듣기, 작문 시험을 차례차례 치더니 마지막에는 종합작문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시험을 쳤다. 강연의 일부를 들은 후에 그와 연결되는 기사를 읽고 자신의 의견을 에세이로 작성하는 시험이었다. 고프다못해 쓰린 배를 움켜쥐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니 회사 이사님에 대한 증오심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그후 영어로 씌여있긴 하나 외계의 내용인듯한 전공관련 시험을 하나 더 보고 끝났다.
1월 6일, 영어레벨테스트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결과가 좋았다. 영어 과목 하나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예정이 없이 상급 영어 과정이 생길 수도 있으니 혹시 듣고싶은 사람들은 답안지에 표시를 하라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표시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상급 과정이 생성된 것이다.
1월 7일, 첫 수업을 위해 학교로 향했다. 역시 저녁을 먹지 못했다. 하버드 석사라는 강사 왈, 1월 28일에 박사과정을 위해서 하버드로 돌아가야하므로 과정을 2주 반만에 마쳐야겠단다. 덕분에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 있는 수업은 30분을 늘여 밤 11시에 마치게 되었고, 계획에 없이 금요일도 7시에 11시까지 수업을 하게 되었다. 밤 11시면 학교 근처에서 우리 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노선이 끊어진다. 과정은 Presentation과 Negotiation을 주로 다루는 것이었다. 수강인원은 12명이었다. 12명이 돌아가며 자기소개 자료를 만들어 발표했다. 이건 무슨 네이티브들도 아닌데... 다들 영어를 숨쉬듯이 한다. 수업을 마치고 택시-6호선-3호선-7호선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늦어도 너무 늦은 저녁을 먹었다.
1월 8일, 영어수업을 위해 학교로 가야하는데 미팅을 하다가 시간을 잊었다. 미친듯이 뛰쳐나갔더니 다행히 수업에 늦지는 않았다. 이 날은 교재의 4개 장을 공부하고 자기소개를 주 내용으로 간단한 Presentation을 돌아가면서 했다. Presentation의 여러 측면에 대해 강사가 지적을 해주었다. 11시에 마치면서 내일 수업에 Presentation 숙제를 내주었다. 특정 회사 또는 조직에 대한 간단한 History를 소개해주는 내용이었다. 택시-1호선지선-3호선-7호선을 타고 집에 오다가 라면을 하나 사서 끓여먹었다. 12시가 넘어 혼자 라면을 먹고 앉아있자니 처량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숙제를 미루고 자버렸다.
1월 9일, 회사에서 차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런데 수업에 살짝 늦었다. 그 동네는 외지고 멀면서 길은 또 엄청 막힌다. 출발하기 전에 벼락치기로 파워포인트 2장짜리 자료를 만들기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정리하지를 못해서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막상 앞에 나가니 배웠던 내용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학생 두 명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내뱉는 Filler Words를 세고, 다른 한 명이 시간을 쟀다. 주어진 시간이 되면 하던 말을 멈춰야했다. 몇몇 학생들은 멋들어진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와서 줄줄 발표를 했다. 강사가 전체적인 부분을 채점해서 나눠주었다.
다음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각각 다른 Presentation을 해야한단다. 주말에 준비할 수밖에 없다. 4~5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이지만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작성하고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숙지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린다. 게다가 많은 연습을 해야만 자연스러운 손동작과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날도 저녁을 먹지 못했다.
1월 10일, 토요일이다. 영어수업은 없지만 회계학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체코 출신의 강사는 국내 모대학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강의를 하면서 상당히 힘들어했다. 얼어붙을듯 추운 날씨라 강의실 공기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강사의 감기가 심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회계학은 재미있는 학문인 듯했다. 3번 밖에 없는 수업의 마지막에 팀 Presentation과 시험이 있기 때문에 준비를 위해 미리 팀을 짰다. 영어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뭉쳤다. 발표 주제로 IFRS를 찍었는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날 때쯤 강사가 숙제를 내주었다. 팀미션으로, 나눠준 자료를 보고 해당 업체의 Beginning Balance Sheet을 만들고 주어진 기업활동의 Transactions 제시문을 보고 Journal Entries와 T-Accounts를 생성한 후 그 내용을 종합하여 Ending Balance Sheet을 만든 후 최종적으로 Financial Leverage Ratio를 구하는 것이었다. 월요일까지 제출하라고 하니 일요일에 모여서 숙제를 하라는 것인지! 그 외에도 교재 66 페이지를 읽고 문제를 푸는 것과 Balance Sheet에 관련된 개인 숙제가 추가로 주어졌다.
우리는 팀숙제를 처리하고 가기로 하고 5명이 분업하여 작업을 했다. 기적적으로 한 번 시도에 Ending Balance Sheet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6시 반에 집으로 향했다.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주일 사이에 아버지는 심장혈관 확장 수술을 받으셨고 나는 회사의 2009년 사업계획 수립 책임자가 되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면서 나는 어머니 제사를 까먹고 말았다. 토요일 회계학 숙제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고구마를 굽고 있다가 동생의 항의성 전화를 받고서야 어머니 제사가 있다는 걸 생각해낸 것이다. 서울에서 처음 지내는 어머니 제사인지라 올케도 남동생도 신경을 많이 썼을텐데... 부랴부랴 가스불을 끄고 동생네로 가서 제사를 함께 지냈지만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 걸 어머니가 보시면 좋아하실까 어쩔까 모르겠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야간대학원이 이렇게 빡셀 줄 알았다면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지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